금정산성토산주 이야기

전통민속주 민속주 제1호

생계수단으로 누룩을 빚기 시작한데서 유래

금정산성막걸리는 그 유래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조선 초기부터 이곳 화전민이 생계수단으로 누룩을 빚기 시작한데서 비롯되었으며 숙종 32년(1706년) 왜구의 침략에 대비키 위해 금정산성을 축성하면서 외지인들의 유입이 늘어나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성을 쌓기 위해 각 지역에서 징발된 인부들은 막걸리 맛에 반해 축성공사가 끝난 후, 고향에 돌아가서도 그 맛을 그리워 했다고 합니다.

이후, 금정산성막걸리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널리 보급됐고, 일제시대에는 널리 만주와 일본까지 건너갈 정도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특히 일제 때는 고유의 맛을 지닌 이 막걸리가 더욱 알려져 금정산성에서 누룩을 많이 만들고 적게 만드는 차이에 따라 부산 동래를 비롯한 동부 경남 일원의 곡물 값이 올랐다 내렸다 할 정도로 시장을 좌지우지하였습니다.

1960년부터 정부의 누룩 제조 금지로 한 때 밀주로 단속을 받았으나 주민들은 단속의 눈을 피해 술을 빚어 명맥을 유지해 오다 1980년 전통민속주 제도가 생기면서 민속주 제1호로 지정 받았습니다.

금정산성막걸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누룩마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부산의 금정산성 안에 있습니다. 산성에 있는 마을이라 별다른 농토가 있었던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생계수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누룩이 주요 소득원이 되었고, 관계기관의 제조단속 앞에서도 꿋꿋하게 누룩을 지켜왔습니다. 산성누룩은 보통 누룩처럼 도톰하게 딛지 않고 베보자기에 싸서 발로 둥그렇고 납작하게 딛습니다. 이렇게 딛어진 누룩은 누룩방의 선반위에다 짚을 깔고 1주 정도를 열이 나게 띄웁니다. 잘 띄운 산성누룩은 예부터 품질이 좋기로 입소문이 자자합니다.

금정산성막걸리는 족타식, 덧신을 신고 꼭꼭 밟아 500년 째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흑국, 황국 등 일본식 배양균을 사용하는 입국법 대신 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하고 있어 우리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하루 평균 750ml 병을 기준으로 6천 병 가량이 최대생산량이며 전통 방식으로 막걸리를 제조하는 만큼 주문이 아무리 쇄도해도 생산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전통과 현대적 생산시스템을 위생적이고 안전하게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제조사 '금정산성토산주'는 우리의 건강한 먹거리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 시켜나가고 있습니다.